[총통각하] 총통 각하께서 구국의 결단을 내리셨다네
총통이 아직 대통령이었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총통과 그의 측근들은 대통령 당선 이후, 자신이 속해있는 당의 의원들에게 비밀리에 제안을 던진다. 국회를 기습적으로 자진해산하고, 동시에 이전에 정해진 선거구당 거주민을 후보가 될 1인만 남기고 행정부에서 모두 날려버리는 것. 국회를 완전히 장악하고 국회의원 임기를 종신으로, 대통령 자신의 임기를 10년으로 하는 것 등이다.
이 ‘설득’ 과정은 처음에는 정신 나간 소리로 받아들여졌으나, 한두 명씩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나오자 분위기가 확 바뀐다. 죄수의 딜레마도 아니고, 모두 양심에 따라 반대하는게 모두 참여하는 것보다 이득인 상황은, 약간의 협박과 뇌물 등이 함께하니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총통은 대통령 취임 직후, 경기도 전체를 강남구로 편입시키며, ‘친환경 대한민국’을 이유로 서울특별시 외의 모든 국토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였다. 부울경이나 인천 정도의 예외적인 공원집단시설지구를 제외하면 일체의 거주 및 출입이 금지되었으며 거주민들은 강제로 수용당하게 된다.
이러한 폭거를 막아야 할 국회는, 여당 국회의원들이 전원 사퇴함으로서 자진 해산 및 재선거를 선언해 버린다. 불체포특권을 잃어버린 야당의 前국회의원들은 잡다한 이유로 체포 및 구금되었다. 그리고 총통을 뽑지 않은 대구광역시에는 특히 가혹한 퇴거 절차가 진행되었다.
아는 사람은 아는 친총통파 사단장들이 국립공원공단의 요청을 받아 ‘대민지원’을 나갔고, 국립공원 내 불법 시설물 철거에 반발한 대구 사람들은 반란군으로 규정되고 계엄이 선포되었다. - 해제를 요구할 국회는 현재 존재하지 않았다. - 민병대 수준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 분명한 대구 반란군은 의아하게도 몇 개 사단을 전멸시키고야 진압되었다고 발표하였다.
공교롭게도, 며칠 뒤 사라진 군인 수와 비슷한 규모의 준군사조직인 “국립공원공단 특별사법무장경찰대”가 발족하였다. 훗날 친위대로 불리게 되는 이 조직은 발족 즉시 서울을 포위, 서울시민 전체를 인질로 삼아 군 상층부에 대한 대통령의 인사정책을 보좌했다. 합참의장을 제끼고 계엄사령관이 된 육참총장은 대구 반란 관련자들을 색출한다며 전 야당 인사 및 그 가족을 모조리 잡아 가두었다.
재선거 전날 저녁,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그리고 계엄사령관 이름으로 각각 ‘국회 자진해산은 무효이고, 궐석 의원들에 대한 보궐선거를 실시하는 것이 맞다’는 유권 해석을 내놓는다. 사라졌던 야당 의원들은 가족을 제외한 본인만 풀려나 임시국회를 열었다. 임시국회는 총통이 제안한 개헌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다.
한두 군데씩 멍이 들었던 탓일까? 아니면 가족들이 인질이 된 상황 탓일까? 여당 의원들에 대한 복수심에 가득 찬 현직 국회의원들의 바람대로, 사퇴한 前국회의원들의 총사퇴 소동은 헌법기관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 내란죄로 긴급체포된다. 아무것도 모르고 미리 당선을 축하하는 축하연을 벌이다 그 자리에서 일망타진당한 이들은 며칠 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된다.
이 날 이후, 사람들은 더이상 총통을 대통령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바야흐로 대총통 시대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