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와 절대악
세상 일들이 으레 그렇듯, 절대적으로 나쁜 건 의외로 많지 않다. 열강의 식민제국주의,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일제강점기, 독재정권 등등… ‘의도는 좋았다’, ‘결과는 좋았다’, ‘A, B 중 A만 좋았다’ 같은 것들이 대부분이지. 모든 건 공돌이들한테는 익숙한 개념인 ‘Trade-off’ 관계이지, 모든 걸 전부 해결해줄 ‘Silver bullet’은 없다.
독재정권 또한 마찬가지, 독재정권이 아니었으면 그린벨트나 경부고속도로 주변 토지 수용 등 사실상 개인의 재산권을 강탈해간 정책들은 불가능했고, 이러한 결과들은 독재 자체를 정당화해 주지는 않지만 독재와 떨어뜨려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다.
한국사 올타임 넘버원 킹갓엠페러제너럴마제스티 세종대왕도 당시 여론을 씹고 한글 반포를 밀어붙였다. 그 결과가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문자체계고. 한글 반포는 개인적 신념을 담은 정책이었고, 외교적 리스크와 정치체계 전복 리스크가 있는 모험적인 정책이었다.
민주주의는 책임을 나눠 지는 만큼 모험이 쉽지 않다. 독재자는 책임을 오롯이 지는 만큼 모가지 따일 리스크를 안고 모험을 할 수 있다. 실제로 박통은 막판에 부가세 관련해서 모험을 했고 그 결과는 부마항쟁과 저격이었다.
반면 문재인 정권이 아무리 잘못을 저질러도 그 책임은 다음 선거 패배니 차기 정권의 경찰권을 통한 제재이지, 과거 사화에서 패배한 붕당처럼 몇천명씩 처형당하고 하지 않는다.
세계 인구의 55%는 독재정권 아래에서 산다. 언럭키 독재정권 북한인도 있고, 럭키 독재정권 UAE도 있다. 민주주의는 과거와는 달리 시민 대부분이 교육받은 계층이 되어 일어나는 ‘선호’이자 ‘이상향’이지, ‘절대선’은 아니다. (의도치 않은 피해자가 가장 적어지는 결과를 선택하는 것)
노태우는, 그런 시각으로 보면 대단히 뛰어난 대통령이었다. (DJ 덕분에) 직선제 선거였음에도 군사정권 출신이 당선된 순간, ‘독재정권에 대한 국민의 재신임’을 명분으로 다시 독재정권으로 회귀하는게 역사적으론 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으리라. 그러나 ‘보통 사람’ 노태우는 그러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그는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큰 기여를 한 셈이다.
사회 체제는 선형적으로 진화하지 않는다. 시대적 배경에 대한 고려 없이 ‘독재’ 자체만 놓고 미개한 사회 체제라고 매도하는 건, 식민제국주의 열강이 미개한 토인들을 ‘문명화’시켜주기 위해 식민지배를 하겠다는 명분과 일맥상통하는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