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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미술을 위한 변명

essay social

나도 미술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가끔 미술관을 가곤 한다. 사진으로 보기엔 낙서같아 보이는 그림들도, 실제로 가서 보면 사진으로는 느껴지지 않았던 통기나 질감 등으로 인해 짜릿한 전율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물론 어린아이의 낙서가 그정도로 큰 캔버스에 잘 그려져 있다면, 거기서도 무엇인가 어떤 느낌을 받기는 할것이다. 유명한 작가보다 더 감명깊을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나는 미술을 잘 모르기 때문에 작품만 보고서는 구별하기가 힘들다. 그렇지만, 작가의 의도고 뭐고 보면서 멍하게 서있는 그 순간이 좋다.

어린아이의 낙서와 현대 미술을 어떻게 구별할까? 라는 글은 사실 불공평하다. 현대 미술에 와서는 작가 자체가 일종의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자기만의 어떤 특징적인 부분을 정의하고, 이걸 꾸준히 어필함으로서 브랜드화시킨다. 이 브랜드가 자신의 작품의 가치가 된다. 그러나 그 글에서는 작가도 제목도 없고, 심지어 원본을 잘라서 넣기까지 했다.

폴록

잭슨 폴록의 그림 그리는 모습(사진 1)을 보면, 나도 저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내가 물감을 저렇게 뿌렸다고 해서 그의 그림처럼 1800억에 팔리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폴록 이후로 저런 스타일의 그림은 ‘폴록 짝퉁’ 내지 ‘폴록 오마주’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폴록도 처음 뉴욕 미술계에 데뷔했을 때, ‘피카소 스러운 그림’으로 받아들여져 그림을 한 점도 팔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피카소가 웬만한 건 다 해놓고 가서 후대의 작가들이 많이 미워했다고…) 어떻게 하면 짝퉁이 아니라 내 브랜드를 만들지 고민하다 나온게 액션 페인팅이었고, 대박이 났다.

리히터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작품들(사진 2)를 보자. 초기 작품에서 점점 흐릿해지다 형태까지 다 사라져버린다. 우측 아래의 ‘9월’은 형태가 많이 흐릿함에도 무엇을 그린 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테스트에 나왔던 ‘나무들’은 연작 중 하나로, 숲을 표현한 그림이라고 한다.

길리암

샘 길리암의 ‘Coffee Thyme’(사진3) 역시 연작 중 하나로, 시리즈 중 하나만 떼놓고 보면 의미가 없어 보일 수 있겠다.

벤츠 카니발

어떤 가방은 브랜드 텍을 지우면 싸구려 시장가방이 된다. 어떤 차는 브랜드를 바꾸면 갑자기 고오급 차가 된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보기 힘든 S급 짝퉁과 정품의 차이는 무엇일까? 명품 브랜드와 콜라보한 제품을 사려고 새벽부터 유니클로 앞에 줄을 서는 사람들의 심리는 무엇일까?

물론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 미술계가 더 노력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본다. 하지만 현대 미술이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을 필요도, 그럴 수도 없다. 나는 아직도 떫다 달다만 구분할 수 있는 와인의 맛이라던가, 아무리 좋아 봐야 전자시계보다 부정확한 기계식 시계의 무브먼트들 간의 차이라던가를 구분할 수 없다.

딱 그 정도의 이야기이다.


시장가방 루이비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