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거리두기
안타깝게도 ‘사회적 거리두기’는 코로나 종식 전까지 완화될 수 없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효과가 없을수록 더더욱 그렇다. 잘못했다고 인정하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기 때문이다.
기호지세騎虎之勢라는 말이 데다.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모양이라는 뜻으로, 호랑이를 타고 가다 도중에 내리면 잡혀 먹히듯이 중도에서 그만둘 수 없는 절박한 형세를 말한다. 지금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딱 이러한 모양새다.
현 정부에게 ‘사회적 거리두기’는 무조건 옳은 정책이어야 한다. 정책의 잘못됨을 인정하는 순간, 피해자들의 피해는 고스란히 정부 책임이 되기 때문이다. 피해는 점점 누적되어 왔고, 이제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쌓여버렸다. 처음엔 백신 미확보를 가리기 위한 K-방역이었을지 몰라도, 이제는 K-방역이 싫어도 K-방역 ‘덕분에’를 외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거리두기 덕분에 확진자가 적었고, 거리두기에도 불구하고 확진자가 많아졌다. 이렇게 말하기 위해선 거리두기 없이 확진자가 줄어들어선 안된다. 거리두기 없이도 방역이 성공하는 순간 거리두기로 인한 피해들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게 된다. 효과도 없고 모순투성이라는 걸 알아도, 확진자 추세가 꺾이길 기도하며 뭐라도 더 ‘거리두는 척’이라도 할 수 밖에 없다.
런닝머신을 6kmph로 제한하고, 헬스장 음악을 120bpm 이하로 제한하는 정책은 바보라서 만든 것이 아니다. 이미 ‘대다수의 일반인’이 느끼기에 더 ‘거리둔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해버렸기에, 임팩트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오늘도, ‘이렇게까지 더 제한한다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3인이상이므로 부모님댁에서 식사 불가’ 제한을 비웃으며, 만원 지하철 만원 버스를 타고 일찍 집에 들어간다. 그러다 몇 주 후 코로나가 조금 잠잠해지면, 국민 여러분의 ‘거리두기’ 협조 덕분에 코로나 확산세가 한 풀 꺾였다는 말이나 듣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