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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여성도서관에 대한 거짓말들

essay so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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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여성도서관은 여성만을 위한 전용 도서관의 필요성과 풍성한 독서 환경 제공을 위하여 설립되었다.”

불과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제천시립도서관 홈페이지에 버젓이 올라와 있던 문구이다. 오늘 MBC 충북에서 기증자께서 여성도서관 건립을 원한 것이 아니라는 인터뷰 영상을 공개하자 갑자기 삭제되었다. 청와대 국민청원을 넣은 사람도 살짝 억울할 만 하다. 도서관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1991년에 김학임 여사가 제천 여성을 위한 도서관을 지어달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대체 왜 사실이 아닌 것이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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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여성도서관 관련 논쟁이 본격화 된 것은 벌써 10년 전이다. 2011년 6월 국가인권위원회에 “A시립도서관이 여성전용도서관으로 운영되면서 남성의 이용을 제한하는 것은 차별”이라는 진정이 제기되었고, 같은 해 11월 말에 인권위에서 “도서관 이용에 남성이 배제되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한다.

하지만 인권위 권고는 강제성이 없었고, 당시 도서관측은 “여성전용 도서관 건립을 조건으로 부지를 기증한 기증자의 유지” 외에 몇 가지를 이유로 부적절하다고 주장했고, 12년 2월에 인권위에서 다시 한 번 보도자료를 통해 이를 반박한다. 하지만 제천시측은 이를 무시한다.

남성연대는 이에 반발해 항의 시위를 하는데, 최명현 당시 제천시장은 “여성 도서관을 짓겠다고 땅을 기증받고서 다른 건물을 짓는 것은 장학금을 기부받아 다른 데 쓰는 것과 같다”며 반대했지만 결국 타협안을 내놓는다. 이에 따라 도서관의 1층 일부(33㎡)를 남성도 이용 가능한 북카페로 바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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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적 진실은 이렇다. 故김학임 할머니께서 시립도서관 용도로 땅을 기부채납했고, 부지가 너무 좁아 시에서는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을 권했다. 이에 기증자께서는 무조건 도서관을 지어야 한다며, 여성도서관이라도 좋으니 지어달라고 한다. 이를 받아들인 제천시에서 여성도서관을 짓는다. 그리고 당시 유일한 뉴스통신사였던 연합뉴스에서는 이를 취재해 기사를 싣는다.

『 “문화회관 도서관이 협소할 뿐 아니라 시 외곽지역인 花山동 변두리에 위치해 있어 밤늦게 귀가하는 여학생들이 신변에 위협을 느껴 학부모들이 도서관까지 밤중에 마중을 나가는등 불편이 크다는 소식을 자주 들었지. 자라나는 새싹들에 무엇인가 도움을 줄 수 없을까 궁리해오다 아무래도 배움의 터전을 마련해 주는 것이 좋을 것같아 도서관부지로 내놓기로 한거야”

도서관 부지 희사경위를 이렇게 털어놓은 金할머니는 자신이 내놓은 땅이 시내 한복판에 위치해 있어 여학생들의 전용도서관이 세워지면 안성맞춤일것 같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

이 기사는 각종 일간지에 전재되거나 인용되어 기사로 나갔고, 당시 나온 기사들은 모두 위의 9월 27일 연합뉴스 기사를 바탕으로 한다. 아예 별개로 취재를 한 기사는 출판저널 93호에 실린 정소연 기자의 기사로, 전호 출간일인 10월 5일에서 당호 출간일인 20일 사이에 취재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기사에서는 여성도서관에 관한 언급이 없다. 즉, 대부분의 기사가 최초 취재원인 연합뉴스의 실수 - 혹은 고의 - 로 잘못된 정보가 쓰여졌거나, 연합뉴스 취재 이후 - 더 최근 - 에는 할머니께서 여성 전용에 대한 생각을 바꾸신 것 - 혹은 말을 바꾸신 것 - 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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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충북의 “그거(기사) 잘못 썼습니다. 왜 여학생만 해요. 여학생 얘기도 안 했어요.”라는 인터뷰는 아마 위의 연합뉴스 기사에 대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위 기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직접 인용한 부분에서는 여성도서관 관련 언급이 없는데, 뜬금없이 밑에 여성 전용 도서관 얘기가 나오는 것이 살짝 의심이 간다. 할머니와 연합뉴스, 둘 중에 하나는 거짓말을 한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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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측은 11년도에도, 20년도에도 같은 주장이다. “기증자는 자신이 살던 시대에 여성들이 많이 교육을 받지 못했음을 이유로 여성교육기관 건립을 조건으로해서” 기부채납 했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아마 위 연합뉴스 기사를 근거로 할 것이다. 그러나 11년도 결정례만 봐도 “1991. 9. 26. 작성한 기부채납서에는 기증의 목적을 ‘○○시립도서관 건립 부지’로 하고 있”고, “관련 회의록, 보고서 등을 보면 기증자는 ○○시립도서관 건립 목적으로 기부하였으나 부지 면적이 협소하여 ○○시립도서관의 명칭을 사용하기에 곤란하자 그 대안으로써 여성도서관을 건립”했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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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문제의 관건은 기증자의 의사와는 관련이 없다. 기부채납시 조건을 걸 수 없도록 법에서 정하고 있을 뿐더러, 기증자의 의견은 참고만 하라고 정하고 있다. 또한 처음에 8억원(당시), 매년 1억원(최근)씩 세금을 쓰는 기관을 여성만 이용하도록 하는 것은 불평등하다는 것이 인권위의 결정이다. 그러나 청와대 국민청원에까지 올라온 이 ‘기증자의 유지’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믿고싶은 것만을 믿는지에 대한 단적인 예시가 아닐지 싶다.


“70세할머니 13억상당 땅정도서관부지로 희사”, 연합뉴스, 1991년 9월 27일.

정소연, “충북 제천 시립도서관 부지 기증한 김학임할머니”, 출판저널 no.93, 1991년, pp.12-12.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시정위원회 2011. 11. 25.자 11진정0316500 결정.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시정위원회 2020. 10. 15.자 19진정0688200 결정.

“여성 전용 도서관으로 운영하며 남성 출입 금하는 것은 차별”,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조사과 보도자료, 2012년 2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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